빛의 신비 2단 –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중학교 동창 밴드에 지금껏 혼자 살던 친구 녀석의 결혼 소식이 올라왔다. 밴드에 순식간에 댓글이 달리며 난리가 났다. 낼 모레가 50인데, 지금 애 낳아서 언제 키울 것이냐?, 여태 혼자 살았으니 살던 대로 살아라. 악담인지 덕담인지 분간도 안가는 댓글들이 밴드를 장식 했다.
‘빈첸시오회’를 만든 프레드릭 오자남은 당시 평신도 운동의 기수요, 프랑스 소로본 대학 교수를 지낸 지성인이었다.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이고 유명한 신학자인 라꼬르데르 신부가 있었다, 라꼬르데르 신부는 오자남이 늦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자. 사제성소를 받아 훌륭한 주교가 되기를 고대하였는데, 신부의 기대와는 달리 프레드릭은 예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을 해버린 것 이었다. 라꼬르데르 신부는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불쌍한 오자남! 그 사람마저 덫에 걸리다니!"라고 한탄했다. 그런데 라꼬르데르 신부는 훗날 비오 9세 교황께 이렇게 꾸중을 들었다.
"이봐요, 신부님,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께서 일곱 성사를 세우신 것으로 아는데,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예수님께서는 여섯 성사와 덫 하나를 세우신 것 같습니다. 신부님, 허나 혼인은 덫이 아니고 크나큰 성사올시다."
예수님이 나자렛 이웃 동네 가나촌에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혼인잔치 집에 앉아 계시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어머니도 오셨지만 부엌에서 일손을 돕느라고 분주하시다. 신랑 신부의 화사한 자태며, 온갖 손님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머리에는 "하늘나라는 혼인잔치와 같으니..."라는 멋진 설교 착상이 떠올리며(마태 22. l-l4). 예수님 당신도 홍에 겨워 신랑 신부에게 진심으로 축원을 보내는데 어머니 마리아가 부르신다. 뒤꼍으로 나오라신다.
"손님이 너무 많다 보니 술이 떨어졌구나. 너까지 장정(12제자)을 몰고 왔으니..." 아드님이 뭐라고 투덜대는 말씀은 아랑곳 않고 어머님은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하여라."고 이르시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너만 믿는다는 말씀에는 하릴없다.
돌 항아리 가득 찼던 물들이, 사람으로 오시어 내려다보시는 창조주의 시선에 새색시보다 훨씬 새빨간 얼굴(포도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초대하여 새 술 열두 동이를 받은 혼인식은 고스란히 성사(聖事)로 높여졌다. 가나의 기적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혼인을 신비라고 했고(에페 5, 32), 결혼을 예로 들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심오한 일치를 가르쳤던 것 같다. 늦은 결혼이지만 친구야 잘 살아라...
- 홍보분과 정윤규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