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성당 앞 합판집 담장에 심겨져 있는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많이 열렸다. 특별할 것도 없는 무화과 나무는 우리 성경 구약, 신약을 통해 자주 접하는 나무이다. 자캐오가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던 일, 하와가 무화과 잎을 두렁이로 만들어 입은 사건 등,
루카복음 13,6 예수님 비유의 말씀 안에도 무화과 나무가 등장 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복음에 등장 하는 포도밭 주인도 참 뜸 금 없어 보인다. 왜 포도밭 사이에 무화과를 심었을까?
제가 아는 무화과나무 생장 발육에 좋은 토질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물 빠짐이 좋은 곳이고, 포도나무에 맞는 토질은 약간 척박하지만 경사지고 수분이 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 두 작물의 생육 환경은 상반된다. 성경 속 포도밭 주인은 그런 상반된 생육 환경을 갖고 있는 두 작물을 한곳에 심어 놓고 매일 매일 드나들며 많은 열매 맺기를 기대 합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 라는 나무를 세상 속에다 심어시고는 ‘나’에게 신앙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은 포도넝쿨 가득한 포도밭처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환경이고 그 속의 ‘나’의 존재는 세상 사람들과 또 다른 존재이고, 신앙 속에서의 ‘나’의 삶은, 의인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 나 홀로 남은 죄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름 마음을 다지고 신앙생활에 충실할라치면 세속적 삶의 제약들이 장애물처럼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좋은 것들을 이미 주셨고, 은총의 거름을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게 스스로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더 많은 영적 성장을 해나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