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쏟아져 내리는 이스탄불의 밤거리에서 커다란 구두통을 멘 아이를 만났다 야곱은 집도 나라도 말글도 빼앗긴 채 하카리에서 강제 이주당한 쿠르드 소년이었다.
오늘은 눈 때문에 일도 공치고 밥도 굶었다며 진눈깨비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선 채로 젖은 구두를 닦은 뒤 뭐가 젤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야곱은 전구알 같이 커진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빅맥, 빅맥 이요! 눈부신 맥도날드 유리창을 가리킨다.
학교도 못 가고 날마다 이 거리를 헤매면서 유리창 밖에서 얼마나 빅맥이 먹고 싶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야곱은 커다란 햄버거를 굶주린 사자새끼처럼 덥썩 물어 삼키다 말고 나에게 내밀었다. |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세입쯤 먹었을까 야곱은 남은 햄버거를 슬쩍 감추더니, 다 먹었다며 그만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창 밖에는 흰 눈을 머리에 쓴 대여섯 살 소녀와 아이들이 유리에 바짝 붙어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곱은 앞으로 만날 때마다 아홉 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겠다며 까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몰래 남긴 햄버거를 손으로 떼어 어린 동생들에게 한입, 한입 넣어주는 야곱의 모습을 이스탄불의 풍요와 여행자들의 낭만이 흐르는 눈 내리는 까페 거리의 어둑한 뒷골목에서 나라 뺏긴, 쿠르드의 눈물과 가난과 의지와 희망을 영성체처럼 한입, 한입 떼어 지성스레 넣어주는 쿠르드의 어린 사제 야곱의 모습을.... - 홍보분과 - |
2016.10.24 06:50
이스탄불의 어린사제 시인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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