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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0 22:28

세상에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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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루카 1,39-45)

- 2015년 12월 20일(대림 제4주일) 복음

1220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jpg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세상에 외칩니다.

- 의정부교구 교하본당 상지종 신부

1220 세상에 외칩니다..jpg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세상에 외치고 싶어 깊고 크신 사랑

세상사람 다 알게 되리, 왜 내가 늘 기쁜가

진정 그들은 놀라리라, 내겐 두렴 없음을”

 

가톨릭성가 406번 ‘세상에 외치고 싶어’라는 곡입니다.

이 성가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옴을 느낍니다. 아니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도저히 내 안에만 담아놓을 수 없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기에, 이 성가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의 벗님들께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강렬한 체험을 혼자만으로는 주체할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이 체험을 나누었던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딱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뜨겁게 전해오는 주님의 사랑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체 누군가에게 전하신 적도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체험을 하게 될까요?

하느님께서는 자그마한 우리 마음에는 담을 수 없는 분이시기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순간,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뛰어넘어, 온 세상으로 흘러넘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처럼 변화시키시어, 우리도 당신처럼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 하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고여 있지 않고, 우리를 사랑으로 만들어, 쉼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식이 강렬할수록, 우리는 어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외치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뜨겁게 느끼면 느낄수록,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아무 조건 없이 기꺼이 나누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 놀라운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기쁨 넘치는 감격스러운 만남에 함께 하면서,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고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외침을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처녀로서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두려워하였지만,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했던 마리아가 서둘러 유다 산골의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을 신적 사랑으로 극복한 마리아는 가슴 벅찬 설렘으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나누고자 지체 없이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모든 이를 섬기러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를 잉태한 마리아가, 장차 태 안에 모신 아기 예수님이 그러하듯이, 늙은 나이에 아들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섬기러 길을 떠납니다.

 

이미 주님의 축복으로 구세주의 길을 준비할 아기를 잉태한 엘리사벳은 환한 웃음 지으며 마리아를 반깁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 구원의 계획을 알고 있던 엘리사벳은 마리아뿐만 아니라 마리아 태중의 아기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품에 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이 조금만 더 젊었다면, 마리아를 먼저 찾아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처지가 아쉽고 안타까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어머니가 몸소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엘리사벳이 말합니다.

 

엘리사벳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놀람과 기쁨, 고마움과 감격스러움 등이 어우러졌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속에서, 또한 마리아 태중의 예수님과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이 서로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렇게 구원의 새 역사가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두 사람, 마리아와 엘리사벳 사이에는 어떠한 나뉨도 없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와 마리아에게 축복의 인사를 전하는 엘리사벳은 하나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며, 서로가 서로에게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힘차게 전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감격적인 만남의 자리에 초대받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자리 한 구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한 기쁨과 행복을 힘차게 노래하도록 초대받은 것입니다.

맘껏 외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쁨 넘치는 외침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해져 온 세상을 하얗게 그리고 환하게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강론을 마치며 이러한 희망을 담은 작은 묵상 글 하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은 행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 한가운데에서

따뜻한 자리를 찾기보다,

힘겹게 겨울을 나야 할

가진 것 없는 벗들의 추위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당신은

내게 행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당신 안에 담긴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세상살이 한 가운데에서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 때문에

신음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에

환한 웃음 짓는 당신은

내게 행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당신 안에 담긴 주님의 희망을

보여 주였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세상 한 가운데에서

함께 할 수 없는 불신의 늪에서 헤매기보다,

함께 해야만 하는 아름다운 믿음으로

삶을 가꾸는 당신은

내게 행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당신 안에 담긴 주님의 믿음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내게 다가와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나누었듯이,

나 역시 당신에게, 벗들에게

이 모두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 희망, 믿음 안에서

당신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되었듯이,

내 행복 역시 당신의, 벗들의 행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희망은 희망을 낳으며,

믿음은 믿음을 낳고,

행복은 행복을 낳는 것이기에,

당신과 나의 자그마한 이 모든 것이

옆에 있는 벗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피어나

언젠가 모든 이 안에

풍성히 함께하기를 희망하며,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아름다운 만남의 자리에 선

당신과 나를 그리며

자그마한 웃음 지어봅니다.

 

▣ 첨언

세례자 요한은 자기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약속된 성령을 받는다(1,15). 그는 메시아를 알아 보고 자기 어머니 엘리사벳의 환호를 통하여 메시아를 가리켜 보인다.

예수님의 유년기와 소년기의 복음은 당신 인격, 생애, 말씀, 활동을 상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요한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을 받고, 기다리던 메시아를 계시할 사명을 이미 수행하기 시작한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마리아의 몸과 태중에서 일어나는 비밀, 즉 마리아가 주님이신 메시아의 어머니가 된다는 비밀을 알아보고 예언을 한다. 마리아의 믿음을 찬양하고 마리아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친척과 연대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120킬로미터쯤 떨어진 유다 산골까지 여행을 떠난다. 임신한 지가 꽤 지난 늙은 사촌 엘리사벳을 도우러 간 것이다. 그래서 두 어머니가 만나고, 그 태중의 아기들이 만난다.

예수님의 선구자요 심부름꾼인 세례자 요한의 탄생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은 더욱더 커진다. 요한의 탄생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은 당신 백성과 영원히 맺어 준 계약에 충실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고 찬양한다.

 

※ 출처 ⇒ ‘길 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 사람의 길’ 제306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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