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조회 수 3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고, 승천하시다 (마르코 16,15-20)

- 2015년 12월 3일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복음

1203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jpg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 의정부교구 병원사목 현우석 신부님

1203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jpg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복음을 읽고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이지만, 우리는 복음이라 읽고 기쁜 소식으로 들어야 합니다. 즉,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기쁜 소식입니다라고 하는 게 전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어떤 기쁜 소식이 들릴지 우리가 궁금해 하고 기다려지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일단 제가 잘 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 이 말을 풀면 기쁜 소식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당연한 표현이 됩니다. 기쁜 소식을 들으면 기쁘니까요 -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디 제 강론을 듣는 여러분이 어려워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요. 바오로 사도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며 전도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힘든 일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으려면 기쁨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의무감, 당위만으론 오래 할 수가 없잖아요. 결국엔 지치고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비에르 성인은 복음의 기쁨,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인 거죠.

내가 이렇게 기쁘니 이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면 그도 기뻐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도 복음은 기쁜 소식이 되어야겠죠. 나부터 기뻐야 다른 사람도 기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기쁜 소식이라고 자꾸 얘기하는데 이 소식이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걸까요? 그에 대한 확신 또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인 기쁜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겠죠.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시며 회심과 회개를 요청하셨는데, 여기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돌봄이 꼭 들어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99마리에 속해있을 확률이 99%입니다.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은 1%. 굉장히 낮죠. 하지만, 인간은 그 1%에 내가 속할 가능성의 비중으로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더 많이 크게 신경 씁니다.

더구나 목자가 한 마리가 없어졌을 때 한 마리 정도는 없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불안과 걱정의 강도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양 한 마리가 없어져도 찾으러 가지 않는 목자라면 그 한 해 전체 입장에서는 몇 %정도 없어지는 겠이겠지만 길을 잃은 양 한 마리 입장에서는 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힘으로 무리로 되돌아와야만 하고 돌아가지 못 하면 굶어죽거나 늑대에게 잡혀 죽게 됩니다.

 

이런 목자 아래서 야훼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라고 흥겹게 노래 부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목자는 이런 목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분은 그 사회의 가난하고 힘 약한 이들, 억울한 일을 당해 고통받는 이들, 심지어는 더럽고 죄스런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까지 품에 안으셨습니다. 이런 이들까지 기뻐할 수 있는 소식이어야 진정으로 모든 이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이런 복음을 우리는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첨언

선교라는 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말을 우리는 가끔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듯,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일진데 교회를 세우고 입교자를 끌어오는 것을 선교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도 명료합니다. 마귀를 몰아내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하느님 나라라는 광명을 찾는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이웃의 마음을 짓누르는 억압의 사슬을 풀어주고,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하느님의 비전을 설립하고, 세상의 해악에서 굳건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며, 아픈 세상을 자비의 손길로 치유하는 일이 복음 선포이고 하느님 나라입니다.

스승 예수께서 이 길을 가자고 하십니다. 함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출처 ⇒ ‘길 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 사람의 길’ 제289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발행)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 예수님의 사도로 산다는 것은 file 아타나시오 2015.12.05 342
120 '현실 안주'와 '현실 변혁' 사이에서 file 아타나시오 2015.12.04 533
»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오. file 아타나시오 2015.12.03 323
118 바로 당신입니다 file 아타나시오 2015.12.02 110
117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file 아타나시오 2015.12.01 136
116 사람 낚는 어부, 사람 낚는 그물 file 아타나시오 2015.11.30 972
115 ‘주님! 왜 오셨어요?’와 ‘주님! 어서 오십시오’ 사이에서 file 아타나시오 2015.11.30 153
114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file 아타나시오 2015.11.28 248
113 그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file 아타나시오 2015.11.28 282
112 구원을 향한 희망의 신앙 file 아타나시오 2015.11.26 181
111 대한민국 이란? (유머) 구암관리자 2015.11.21 46
110 ‘주님의 기도’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 있나. 구암관리자 2015.11.21 191
109 기도할 때는 구암관리자 2015.11.21 20
108 기도로 무엇이 이루어지나? 구암관리자 2015.11.21 39
107 교만의 종류 구암관리자 2015.11.21 81
106 나는 예수님이 전부인가 송아지 2015.11.21 131
105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file 구자룡 아타나시오 2015.04.05 228
104 세월호의 부활을 기도합니다 file 구자룡 아타나시오 2015.04.04 292
103 침묵의 십자가 앞에서 file 구자룡 아타나시오 2015.04.03 456
102 나의 마지막 길에 함께하는 사람들 file 구자룡 아타나시오 2015.03.29 332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4 Nex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