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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7 15:54

일어나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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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풍병자를 고치시다 (루카 5,17-26)

- 2015년 12월 7일(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1207 중풍병자를 고치시다.jpg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 일어나 걸어라

1207 일어나 걸어라.jpg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예수님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는 사람, 그 하느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지식과 명성을 버리는 길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이 병자는 치유의 은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벗겨내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에게 죄의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당연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시비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죄'의 용서를 말씀하셨을까요?

사람을 얽어매는 질병은 '죄'의 결과입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삶을 살았기에 질병을 얻게 되었을 것이고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리기 때문에 병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는 곡식으로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음에도 서로 나누지 않기에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있고, 너무나 많이 먹어서 병이 들기도 합니다.

주체할 수 없이 돈을 벌어서 곳간에 쌓아놓기만 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동전 한 닢 때문에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죄악의 사슬에 얽매인 우리가 질병 없이 살아가는 것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슬이 끊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은 죄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사슬을 끊어버리고 살아가는 길로 인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여기서 실현 되었다는 말과도 동일한 의미 일 것입니다.

 

율법으로 하느님을 정의하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권한의 문제를 꺼내게 되고 심지어는 신성모독을 들먹이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믿지 못하는 탓일 것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을 얘기하면서 돈을 섬기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 교회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에는 하느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있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도 있고, 치유를 베풀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그 길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직책과 직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한다면 높은 지위와 권한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치유를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중풍병자처럼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치유를 기다린다면 지붕을 벗겨내고 예수님 앞에 나가듯 적극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어서 나가 예수님과 같이 이 세상에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 첨언

율법학자들은 법률 전문가로서 성경을 잘 알고 있고 인생살이를 시시콜콜 규정하는 율법을 해석하는 자들이었다.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킨다고 우쭐대면서 배운 것이 없어 율법도 모르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는 자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병자를 고쳐 주기 전에 먼저 죄를 용서함으로써 악을 뿌리부터 잘라 내신다.

단순히 증상만이 아니라 그 원인을 없앰으로써 질병을 고쳐 주신다. 증상과 원인을 함께 치유하고 안팎으로 자유롭게 하고 정신과 육체를 고쳐 주신다.

그리고 그런 일이 공으로 ‘은총으로’이루어진다.

당시 사람들은 봉헌물과 제물을 바쳐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심기가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죄를 용서한다고 말씀하시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한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을 눈치챈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과 똑같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병자를 고쳐주신다.

예수님의 형제자매인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잘못을 용서해 줄 힘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 하느님 자신이 그를 용서하실 것이며, 우리 잘못도 용서하실 것이다.

 

※ 출처 ⇒ ‘길 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 사람의 길’ 제293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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