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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마태오 11,11-15)

- 2015년 12월 10일(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복음

1210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jpg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복음은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합니다.

- 의정부교구 병원사목 현우석 신부

1210 복음은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합니다..jpg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여태까지 세상에 태어난 이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랍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브라함이나 다윗왕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란 얘기인데요. 그만큼 예수님은 요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는 걸 얘기하신 거겠죠. 그 누구도 아닌 구세주 당신을 준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요한이 하느님나라의 가장 작은이들보다 작답니다. 즉, 요한은 하느님 나라에서 꼴찌란 얘기입니다. 일등이 꼴찌 되고, 꼴찌가 일등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요한과 가장 작은이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 이유는 하느님 나라에 있을 겁니다. 가장 작은이가 그냥 작은 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살고 있는 작은이니까요.

 

하느님 나라는 그 분의 뜻대로 다스려지는 곳이죠.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는 일등이든 꼴찌든 간에 한결같은 공평한 사랑을 받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남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여러분,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으셨을 겁니다. 전 신학교 1학년 때 이 말을 들었는데 몇 년 동안 잘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은 체험적인 앎이거든요. 받아봐야 그리고 본인이 해봐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이죠. 마치,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기도를 말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처럼요.

 

이것을 좀 확대해본다면 요한은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마지막 위인이라고 볼 수 있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직전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대단한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아느냐, 부분적으로 아느냐가 그 차이를 가를 겁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 약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가가셨습니다. 너희들은 공부 못 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가 이리 되었으니 계속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도움이 필요하니 그 도움을 주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대하셨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슬퍼하니 위로를 주겠다고 하셨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행하다 박해받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될 거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사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사랑을 그 동안 받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전에 주지 않았던 사랑을 새롭게 주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았겠죠. 결국, 누군가가 이 사랑을 막고 있었습니다. 주로 예언자들의 비판이 행해지는 대상들이 그 사랑을 방해했습니다.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 공평한 사랑을 권력자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다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지금 교황님도 그런 대접을 받고 계십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악마의 배설물이라 비판하니 일부 사람들이 그 분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고 나섰지요. 교황님은 하느님의 의로움에 대해, 공평한 사랑에 대해 복음의 정신으로 말씀하신 건데 말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모든 이의 기쁜 소식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준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 아닌 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복음은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 이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퍼져나가는 것,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우리 사회에 오게 하는 데에 일조하는 제자들의 몫이겠습니다.

 

▣ 첨언

구약에서 세례자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 그럴지라도, 세례자 요한은 미리 예언하고 예고하는 구약에 속하고, 구약의 예언이 이미 실현되는 신약에 속하지 않는다.

아마도, 복음서 저자는 하느님의 나라가 폭력에 희생되어 왔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불의한 낡은 사회가 허물어지지 않으려고 반발하고 사납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에 반대하는 자들의 폭력을 예수님 자신이 당신 사명을 수행하면서 체험하실 것이다.

‘다시 오기로 된 엘리야’는 하느님 이 보내실 선구자에 관한 말라키의 예언에 나온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 라 3,23)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 엘리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바꾸어 미움과 불의를 끊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도록 준비시키는 선구자가 되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다시 온 엘리야로서 세례자 요한이 제아무리 큰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작 예수님과 하나가 된 가장 작은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과 일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길 위의 신앙 : 하느님의 길- 사람의 길’ 제296호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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